[김소희] 무경계시대를 살아가는 법
김소희의 트렌드 레터

발행 2019년 0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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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를 정의하는 표현 중 ‘무경계(Borderless)’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 분명하게 정해져 있었던 ‘구분’의 개념이 지금 점점 사라져 갑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직장생활에서 위아래가 분명했지만 최근에는 그런 엄격함이 조심해야 할 주의사항이 되었습니다. 마스터카드 같은 기업은 젊은 직원들이 나이든 직원들을 역(易) 멘토링하기도 하니까요.


갑을 관계도 마찬가지에요. 과거엔 그 구분이 너무 선명해서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대사처럼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었어요. 이 시기에는 갑질이라 비난해도 어쨌거나 갑이 을을 책임지고 먹여 살리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소위 갑들이 을과 나누어 먹을 게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을을 더 쥐어짜는 갑질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무경계시대에는 이런 방식은 곤란합니다. 취할 것이 점점 없어질 때 갑은 을로부터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중국의 HLA는 그런 방식을 택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프로모션 업체들은 브랜드의 정확한 ‘을’이에요. 브랜드에선 ‘을’들의 디자인을 엄선해서 매장에 내걸죠. 하지만 HLA는 이들의 풍부한 디자인력을 레버리지 합니다. 갑 노릇을 하는 대신 수많은 프로모션 업체들이 내 매장에 디자인을 내걸고 팔 수 있도록 중개하는 셈이죠. 팔리는 옷에 대해서는 기꺼이 업체들과 더 많이 쉐어하고 대신 팔리지 않는 재고량에 대해선 업체들과 함께 책임을 집니다. 이건 갑을관계가 아닌 ‘파트너십’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회를 주되, 의존적이기 보다 상생의 관계인거죠.


최근 유통과 미디어의 관계도 무경계가 되고 있어요. 웨더컴퍼니는 날씨 정보를 알리는 콘텐츠 기업이지만 한화로 1,400억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유통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그들의 커머스를 돕고 있기 때문이죠. 또 미디어기업인 후왓웨어(WhoWhatWear)는 타겟(Target)과 파트너십을 맺고 PB를 런칭해 타겟에 팔고 있어요.


무경계 시대에서는 ‘관계’를 ‘마진’으로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생산비가 더 저렴하다거나, 말을 더 잘 듣는다는 식의, 혹은 마진을 더 잘 쳐주거나, 결제를 제 때 할 것이라는 식의 생각뿐이라면 애초 잘못된 파트너를 선택하는 중일 확률이 높습니다.


요즘 같은 변혁기에는 상대의 마진이 아니라 상대의 ‘기회’를 바라봐야합니다.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에 통로가 되어 줄 수 있는 친구들과 거래해야 해요. 전에는 을이라 생각했던 기업들이 더 큰 기회를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레거시 기업들이 젊은 스타트업들에게 ‘투자’란 방식으로 그런 거래를 하고 있어요. 스타트업들을 통해 테크 시장이란 세계로 나가보는 거지요.


지금은 누구나 마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그건 현재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시장이 줄어들면서 마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물론 더 나은 마진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찾아야 할 것은 새로운 시장, 새로운 기회입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그런 기회는 우리 내부, 혹은 경쟁자의 모방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관계’에서 기회를 발견하는 지혜가 필요하죠. 그런데 레거시 기업들은 상대가 작거나 젊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을’로 대하는 경향이 여전히 큽니다. 상대가 ‘기회’를 가진 기업이라면 그 태도에서 이미 파트너십에 대한 부정성을 캐치하게 됩니다.


이 시대에는 진짜로 열려있어야 해요. 실패가 두렵겠지만, 작은 프로젝트로 파일럿을 하는 연습을 자꾸 해봐야 합니다. 요즘은 사업 계획을 잘짜서 대대적으로 시작하는 게 촌스러운 시대입니다. 충분한 실험과 파일럿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그런 도박을 해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일단 서로의 니즈를 확인할 때까지 열어두세요.


그리고 어떤 기회도 아쉽지 않은 사람(기업)이 아니라면 자존심은 일단 접어두는 게 좋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기회가 아쉬우니까요.


곧 휴가철이네요. 휴가계획들은 다들 세우셨나요? 더운 여름 건강 유의하시고, 저는 시원해질 무렵 다시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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