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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캐릭터 잡기의 어려움

발행 2020년 06월 11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최근 유튜브를 시작했다. 패션의 역사를 통해 사회, 경제, 미학, 자기계발과 소통에 이르는 다양한 내용을 소화해볼 생각이다. 유튜브내 패션 콘텐츠의 종류도 무궁무진했다. 상황이 녹록치 않음에도 기가 죽진 않았다. 사람은 자신만의 삶의 서사가 있고, 그 서사의 힘이 한 인간의 캐릭터를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든 성공하려면 ‘캐릭터를 잘 잡아야한다’는 말을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캐릭터를 카락티라스(χαρακτήρας)라고 불렀다. 이것은 원래 단단한 표면위에 조각칼로 새긴 점을 뜻했다. 나아가 독특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혹은 남다른 외양을 뜻하게 되었다.


영어의 캐릭터(Character)도 고대 그리스어와 같은 어근에서 출발한다. 즉 조각하고 디자인하는 행위가 담겨있다.


캐릭터 만들기란 단단한 소비자의 마음 판에 내 자신의 개성을 새기고, 이에 호응해 시청자도 마음속에 우리를 새기는 상호작용이 빚어내는 세계다. 글래디에이터란 영화로 우리에게 익숙한 고대 로마시대의 검투사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당대 최고의 셀러브리티였다. 검투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들의 연습장엔 귀족과 여인들이 몰려들었다. 오늘날 아이돌 가수의 공연을 보기 위해 운집한 관람객들과 다르지 않았다. 여인들은 훈련 중인 근육질의 검투사가 흘린 땀방울을 약물처럼 유리병에 담아 수렴화장수로 썼고, 자신이 좋아하는 검투사를 중심으로 팬클럽도 형성되어, 포스터를 스스로 제작하거나 경기 후엔 양편이 갈려 드잡이를 하기도 했다. 귀족 중엔 그 인기가 부러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버리는 이들도 있었다.


검투사는 캐릭터를 가진 배우였다. 캐릭터에 따라 사용하는 무기와 관중에게 어필하는 방식도 달랐다. 달아나는 이는 물고기 모양의 투구를 썼고 또 다른 쪽은 노예를 잡는 ‘추노’ 컨셉으로 그물을 가지고 쫒았다. 싸움에서 진 검투사를 향해 관객들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돌리면 이를 패배한 검투사를 죽이라는 표시로 알고 있는 분들이 꽤 있다. 이거 가짜뉴스다.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하는 것은, 승자를 가리켜 ‘비록 패배했지만 최선을 다한 자를 향해 겨눈 칼을 내려놓으라’는 명령이었다. 검투사들은 몸값이 비쌌다. 오늘날의 소속사를 가진 연예인과 다를 바 없었다. 이 때문에 함부로 죽일 수가 없었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든 이들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항상 승승장구했다.


왜 캐릭터를 잡기가 쉽지 않을까. 그건 나만의 캐릭터를 규정하기가 쉽지 않고, 설령 캐릭터를 만든다 해도 누군가가 쉽게 따서 모방하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유럽 전역의 정치가, 화가, 배우, 작가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일, 타인의 작품과 나의 것을 구분해줄 ‘한끝 차이’를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이러한 걱정거리를 연구하며 당시 사회학자 가브리엘 타르드는 <모방의 법칙>이란 책을 쓴다. 패션분야에서 유행을 만드는 모방의 힘과 그 작용, 장단점에 관해 연구한 최초의 책이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최면 상태라고 주장한다. 자발적인 사고를 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통해 사고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느끼며 누군가가 가진 꿈과 욕망, 관념을 자발적인 것이라고 믿는 것. 이것은 사회적 인간의 고유한 착각이라고 말이다.


이 몽유상태를 극복하는 방법은 딱 하나. 매사에 나를 관찰하고 모방대상을 한 사람 혹은 극소수의 사람으로 한정짓지 않는 것이다. 개성을 발명하려면 모방의 대상을 극도로 넓혀서 그들 각각의 행동요소, 특질을 빌려서 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생각보다 SNS에는 한 사람의 인플루언서에게 과다하게 몰입하는 이들이 꽤 많다. 이것은 개성이 아닌 복제를 만들 뿐이다.


메시지 전달에 ‘잘 팔리는’ 호흡이 있다는 걸 느낀다. 내가 고른 단어와 이를 알리는 편집방식을 배우기 위해 꼭 동종의 인기 패션 콘텐츠를 볼 필요는 없었다. 위로나 공감, 진정성, 지적 우위, 유쾌함 등 사회가 높이 평가하는 사회적 재화를 얻는데 한줌의 ‘우월함’만 보여주면 될 일이다. 이것이 사람의 잠재된 믿음과 욕망의 출구를 열어주며 이 순간 당신을 모방해야 할 매혹(allure)의 대상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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