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사각 지대에 방치된 ‘패션 모델’을 구하라
이재경의 '패션 법 이야기'

발행 2020년 12월 01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 


런웨이에서 늘씬하고 건장한 모델들이 펼치는 현란한 캣워크와 함께 패션은 더욱 빛을 발한다. 패피들의 로망, 패션쇼에서 패션모델은 그 중심에 서 있다. 이처럼 패션모델은 패션산업을 빛내는 스파크 역할로서 중요하며, 연예계까지 진출하여 각광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패션모델 출신 방송인들이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너무도 화려하게 비춰지는 패션모델에게도 감출 수 없는 아픔과 애환이 있었으니, 바로 살인적인 체중 감량과 그로 인해 악화되는 건강 문제이다.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만을 이유로 패션모델들을 인권과 건강의 사각지대로 몰 수는 없다. 2006년 우루과이 출신 모델 라모스 자매가 강도 높은 다이어트 끝에 사망한 사건 이후, 산업의 얼굴인 패션모델의 건강과 복지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프랑스를 필두로 세계적으로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체질량 지수(BMI) 18.5 이하의 모델을 퇴출하는 저체중 모델 보호법은 이스라엘,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먼저 시행되었는데 2017년 패션산업의 메카 프랑스에서도 ‘말라깽이 모델’을 고용할 수 없게 하는 법률이 시행되면서, 파급효과가 커졌다. 원래 상정된 법안은 모델들에 대해 최소 BMI를 정하는 것이었지만 프랑스 내 모델 에이전시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최종 통과된 법률은 모델의 체중과 나이, 체형을 감안하여 모델이 지나치게 말랐는지 여부를 의료진이 결정하여 인증을 거치도록 규정했다. 


해당 의무를 위반하여 저체중 모델을 고용한 모델에이전시, 패션디자이너에게는 7만5,000유로(약 9,000만 원)의 벌금이나 6개월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 단순한 권고 사항이 아니라 무거운 처벌이 뒤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무시무시한 법안은 시행 즉시 패션업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프랑스의 양대 패션 그룹 LVMH와 커링은 공동 선언문을 통하여 저체중과 미성년 모델은 패션쇼 무대에 캐스팅하지 않는다는 고용 기준을 발표했다. 

 

 

금지된 입생로랑 광고
금지된 입생로랑 광고

 


그동안, 마른 모델을 선호하는 패션계의 관행상 모델에게 은근히 저체중을 압박하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또 다른 갑질이었다. 세계 패션계를 이끄는 LVMH와 커링은 모델 보호법 상 의무를 따르는 모델만 고용할뿐만 아니라, 일하는 시간 동안 모델들을 위한 치료사와 심리학자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저체중 문제에만 그치지 아니하고, 모델의 인권과 복지 전반에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리하여, ‘성인을 표현하는’ 광고 캠페인 등의 목적으로 16세 미만 모델은 고용하지 않으며, 16~18세의 모델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일할 수 없으며, 어린 모델들의 보호자 동반 지침도 마련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심지어, 18세 미만의 모델은 법정 대리인을 통하여 허락 서명을 해야 하며, 18세 이상 모델에게는 옷을 갈아입기 위한 개인 공간도 제공된다. 또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모델들이 프로덕션, 포토그래퍼 등과 혼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무까지도 부과하고 있다. 그들은 미투에 대처하는 방안을 한발 빠르게 마련한 셈이다.


우리나라 패션모델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영국의 경우,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깡마른 모델을 내세운 이브 생 로랑 광고가 영국 광고윤리청(ASA)에 의해 금지되는 수준까지 이르렀지만, 우리는 패션모델들에 대한 아무런 보호 장치는 없다. 이는 단순히 패션모델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저체중, 다이어트를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분위기가 젊은 세대들, 특히 여성들의 건강과 행복을 해친다. 거식증 등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패션계 내부에서 자발적 계몽, 정화가 필요하다. 패션모델을 살리는 길이 바로 이 사회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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