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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4)
큐레이터로 산다는 것

발행 2018년 08월 20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특별기고 -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4)

 

큐레이터로 산다는 것

 

전시를 통해, 큐레이터들은 사회를 향해 말을 건다. 그들의 말은 누군가에게 행동을 촉구하기도 하며, 또한 지금 나 자신을 성찰하는데 도움이 되는 어떤 힘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대부분 반응이 비슷하다. ‘멋진 분들을 자주 뵙겠네요!’ 혹은 ‘근사하겠어요!’ ‘독특하다’ 유의 반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많은 분들의 머릿속에 연상되는 ‘패션 Fashion’이라는 세계와는 다른 ‘Fashion’의 세계를 살아간다. 패션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의미를 전시로 풀어내는 내게, 패션은 패션쇼가 열리는 백 스테이지의 치열함이나 전면에 등장하는 모델들의 글래머, 이들을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에디터의 세계가 아니다. 나는 패션을 미술, 인문학, 공학과 같은 다양한 장르의 네트워크와 연결해서 새로운 의미의 서사를 쓰는 일을 한다.


최근 패션전시 하나를 기획했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과 이신우 두 사람의 삶과 작품을 사회와 함께 살펴보는 전시다. 많은 분들이 왜 하필이면 이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냐고 묻는다. 오늘의 글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것으로 갈음해야 할 것 같다.


80년대에서 90년대 IMF 직전까지의 시간은 한국패션사의 화양연화다. 80년대 한국사회에서 라이프스타일이란 단어가 조금씩 회자되기 시작했고 컬러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샤넬과 디올 같은 해외 브랜드들이 내수시장을 잠식하고, 이에 맞서 한국의 독립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개성을 맘껏 실험하며 해외 브랜드와 전쟁을 벌였다. 앙드레 김과 이신우는 이 80~90년대 동시대를 살았지만 패션에 대해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갖고 임했다. 한쪽은 남성 디자이너, 또 한쪽은 여성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오직 한 벌의 옷을 만드는 쿠튀르를 지향할 때, 이신우는 ‘아름다운 옷은 공유되어야 한다’는 기성복의 철학을 철저하게 지켰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결코 두 사람이 만날 일은 없었을 것 같은데, 이 두 사람을 왜 전시장에 옮겼을까. 두 사람의 삶과 작품이 8090이라 불리는 한국패션의 전성기를 아주 색다르게, 대조적으로 읽게 해주는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전시의 제목을 양날의 칼이란 뜻의 Double Edge 라고 지었다. 이 색다름의 관점, 결코 한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두 개의 이야기를, 맥락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하는 것이 큐레이터이다.


미술관 전시들은 하나의 특징이 있다. 많은 작가들이 만든 다양한 작품들이 통일성 있게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만들기 위해 배치된 점이다. 놀라운 건 작품을 만드는 소재와 재료가 다 달라도, 미술관이란 공간에 배치되는 순간부터, 이질적인 작품들이 한 몸처럼 묶여서 동일한 목소리를 낸다. 이것이 바로 큐레이션이 만들어내는 작은 기적이다.


전시를 통해, 큐레이터들은 사회를 향해 말을 건다. 그들의 말은 누군가에게 행동을 촉구하기도 하며, 또한 지금 나 자신을 성찰하는데 도움이 되는 어떤 힘이 되기도 한다. 패션에 대해 공부할수록 나는 패션이 사회 내부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얽힌 체계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옷을 입는 인간의 삶을 바꾸는 문제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번 실패한 사람의 작품, 디자이너가 성취한 혁신 모두 쉽게 잊히는 것을 당연시해왔다. 아니 내면화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전 세대가 했던 실수도 있다. 패션에 대한 견고한 생각을 갖고 자신의 제국을 만들고도, 그 뒤를 이를 후계자를 만드는 문화를 이뤄내지 못한 점, 패션의 혁신을 만들어 온 디자이너들이 경영에 실패했을 때, 채권단이 기존의 디자이너가 이룬 성취를 승계하지 않고, 문화를 끊어낸 것이다. 경영의 실패와 디자인의 실패는 같은 말이 아님에도 말이다.


서구의 경우는 항상 정 반대다. 오래된 헤리티지 브랜드일수록 그 전통의 뿌리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혁신을 위한 고삐를 쥔다. 설령 실패한 브랜드도 M&A를 할 때 문화적 실사를 통해, 경영적인 새로움과 기존문화의 갈등이 충돌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배우지 못했고, 현장에서 실현하지 못했다.


나는 패션의 사회적 역할을 전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말을 걸고 싶었다. 그 신념을 나와 다른 이들이 함께(Con) 꿈을 꾸며 짜나 갈 때(Text), 큐레이터는 세상을 향해 ‘우리가 함께 걸어야 할 좌표’, 즉 맥락을 알려주는 이가 된다. 누군가를 위해 행동할 맥락, 깊은 이야기의 얼개를 짠다는 것은 얼마나 신이 나는 일인가.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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