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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성민 JNG코리아 대표
감각만 믿고 자신만만했던 치기어린 디렉터가 많이 배웠다 … ‘어른’이 됐다

발행 2017년 09월 22일

박선희기자 , sunh@apparelnews.co.kr

인터뷰 - 김성민 JNG코리아 대표

감각만 믿고 자신만만했던 치기어린 디렉터가 많이 배웠다 … ‘어른’이 됐다

 
 
 

“패션에 ‘가성비’라는 말 싫어 … 패션은 이성이 아닌 정신을 지배하는 것”

“내가 가진 가장 큰 능력은 디렉팅이 아니라 사람 판단하고 조합하는 것”



아주 가끔 그런 이들이 있다. 일상을 전쟁하듯 살아가면서도 초등학생 아이 같은 표정을 가진 사람. 혹자들은 경영하는 일을 ‘도 닦는 일’이라고도 하는데, 그런 경지를 지나면 아이의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그 두 상태의 본질 혹은 원형이 실은 같은 것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성민 제이엔지코리아 대표(56)가 바로 그랬다. 그를 둘러싼 이미지는 2000년대 캐주얼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 디렉터, 카리스마, 미다스의 손 같은 화려하고도 날카롭고 차가운 어떤 것이었다.

하지만 직접 그를 만나 먼저 느껴진 것은 자신을 속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있는 그대로 부딪히며 살아온 이의 솔직함 그리고 무수한 아수라를 돌파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따뜻함 같은 것이었다.

지난 15일 입구에서부터 대표 집무실과 내부 전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진짜 내공을 가진 이의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법이라고 했던가. 청바지에 검은색 티셔츠 차림의 김성민 대표가 직원들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네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그가 어디서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창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솔직히 ‘콕스’를 성공시키고 내 것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그렇다고 이후에 디렉터와 CEO로 지내는 동안 독립을 생각하며 일을 한 건 아니다. 막연하게 마흔이 넘으면 사장 한번 해 봐야지 했던 것 같다. 살다보니 인생의 순서대로 온 것 같다.



▲2008년 회사를 차리고 이듬해 런칭한 ‘지프’가 대박을 쳤다.

-사람들은 이름값이 있으니 처음부터 사업이 순조로웠을 거라 생각하는데, 캐주얼 ‘지프’를 런칭할 당시는 여간 고생스럽지 않았다. 13명으로 시작했는데, 외환위기 직후이기도 했고 대형 캐주얼 업체들이 많아 아무도 매장을 내주지 않았다. 현대 코엑스몰 지하 매장이 1호점이었는데, 하루 500만원이 넘는 매출이 나왔다. 매장을 내기 전 이효리가 입은 패딩이 히트를 친 게 계기였다. 온라인 판매를 한 것도 아니었고, 전화로만 1억원 어치를 팔았다. 소문 듣고 찾아온 강남 젊은 멋쟁이들이 열광했다.



▲제이엔지코리아는 브랜드 성격이나 포트폴리오 등 모든 면에서 좀 달랐던 것 같다.

-나는 패션에 ‘가성비’라는 말을 쓰는 것을 싫어한다. 사람들이 패션을 구매할 때 계획과 이성으로 구매하지 않는다. 패션을 패션으로 대하는 것, 그것이 제이엔지와 다른 캐주얼이 다른 점이었을 것이다. 패션은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다.



▲패션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인가.

-디자이너로서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다. 남보다 빨리 더 좋은 걸 보고 제안하며 소비자와 교감해야 한다. 그 본질에 대해 타협해 버리는 순간 소비자들은 바로 떠난다.



▲경영자로서 본인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돈 냄새’를 맡는 능력은 없다. 답은 누구나 안다. 다만 뭘 하더라도 남들과 다르게 하는 것,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것, 끝을 보고 실행을 확인하는 것, 나 뿐 아니라 내부의 직원과 외부의 연결된 사람들까지 그런 방식으로 일을 대하고 실행하도록 하는 것이 비결이면 비결일 것이다. 어떠한 일이건 시간은 들일만큼 들여야 한다. 억지로 띄워서 되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이제는 안다.



▲디렉터 시절부터 지금까지 손대는 브랜드마다 성공시킨 비결이 그것인가.

-그런 것 같다. 2015년 런칭한 ‘시에로코스메틱’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처음부터 단 두 곳의 OEM 회사가 만들어내는 제품에 라벨만 달리해 판매하는 국내 화장품 시장의 기형적인 제조 유통 구조를 거부했다. 100% 우리가 제안하고 정확하게 차별화된 ‘날이 선 제품력’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들였다. 그리고 그것을 구사할 수 있는 말랑말랑한 조직을 만드는데도 공을 많이 들였다. 코스메틱은 올해가 브랜딩 원년이다.

 
▲김 대표는 집무실에서 결재를 받지 않고 직원들을 찾아 다니며 ‘결정’을 본다. 나선영 기획이사와 김 대표가 선 채로 업무를 보고 있다.
 



▲대표님과 일해 본 사람들은 배울게 많았다고들 말한다.

-직원이건 외부업체건 가르치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실패를 안 할 수는 없지만 실패를 최소화하도록 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트렌드를 읽는 방법이나 전개하는 방법을 직원들에게 가르치는데, 영업 기밀이라며 걱정하는 직원들도 있다. 여기서 배운 친구들이 다른 곳에 가서 잘하면 국가에 이바지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우리 회사는 디자인실장과 생산부장 등 핵심 인력들이 모두 창립 멤버다. 80명 넘는 직원들의 근속연수가 꽤 길다.



▲흔히들 디렉터와 경영자는 양립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미술의 기본은 조화, 균형, 파괴다. 이 관점은 패션과 경영, 세상 모든 일에서 통한다. 경영자는 숫자는 물론 인사, 노무, 생산 등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패션은 숫자로만 되는 사업이 아니다. MD 관점에서 보면 잘 팔리는 상품만 만들면 된다. 그런데 안 팔리지만 잘 팔리는 상품을 도와주는 상품이 있다. 데이터를 1차원 평면으로 보는 게 아니라, 패션의 본질을 봐야 하는 것이다. 판매 데이터만으로는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 디렉터가 대표인 회사는 그 점에서 매우 유리하다.



▲여전히 경영자보다 디렉터라는 이미지가 크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능력은 디렉팅이 아니라 사람을 빨리 파악하고, 조합하는 능력이다. 나중에 보니 그게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었다.



▲경영자는 숫자와 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맞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숫자 즉 데이터란 입력하는 사람이 선택한 정보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결국 디지털을 지배하는 것은 사람이다. 디지털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아날로그와 결합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패션을 경영하는 사람은 데이터를 읽는 관점도 달라야 한다.



▲2008년 외환위기 이후 패션 시장은 대량생산의 중저가 일변도였다.

-그건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인 경향이다. 이론 즉 시스템에 입각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패션이 세상을 지배할 뉴 버전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됐다. 나는 디렉터 시절부터 직원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디자이너가 필요 없다고 말하며 MD가 지배하는 대량생산의 끝은 무엇일까. 중국 생산을 하지 않으면 바보 취급을 하며 제조 기반이 모두 해외로 넘어 간 다음은 무엇일까. 결국 ‘메이드 인 코리아’가 답이다.



▲제이엔지가 국내 생산을 고집하는 이유인가.

-이탈리아가 넘지 못하는 프랑스 브랜드가 ‘디오르’와 ‘에르메스’다. ‘메이드 인 프랑스’의 제조 전통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체 생산의 80%를 국내에서 생산한다. 자국의 생산 인프라를 붕괴시키면서 사업을 하면 산업 전체가 붕괴된다. 좀 적게 남기더라도 오래 갈 생각을 해야 한다.



▲국내 생산을 하면서도 몇 배 규모의 회사들보다 이익률이 높다.

-대표가 디렉터라는 점에서 유리한 것 같다. 즉각적인 업무 처리로 속도를 앞당겨 효율을 높이고, 의사 결정 과정의 비용을 줄인다. 그리고 처음부터 답을 몰라서 실패하거나 기회비용을 잃는 일이 이제 거의 없다.



▲그래도 경영자로 산다는 것에 어려운 점이 있지 않나.

-경영이라는 단어가 처음엔 나에게 생소한 것이었지만, 막상 해보니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부터의 내 생활, 내 실제 행위들을 집약한 것이었다. 회사를 빨리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일상으로 받아들이면 힘들지 않다. 다만 요즘은 브랜딩에 걸리는 시간이 과거에 비해 훨씬 길어져서 성격이 급한 나로서는 그게 좀 힘들다.(웃음)



▲내년이면 회사를 만든 지 10년이다.

-정말 쏜살같이 갔다. 처음 외환위기 때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우려하는 이들이 많았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그때 위기는 위기도 아니었다. 인생은 내 계획대로 살아지는 측면이 있는데, 회사는 내 계획대로가 안 되더라. 오래 함께 한 임원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회사가 살아있어. 우리가 제때 밥을 안 주고 부지런히 보살피지 않으면 회사가 우리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라고. 감각만 믿고 자신만만했던 치기어린 디렉터가 많이 배웠다. 어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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