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마당 - 박병철

고객은 ‘현물 가치’를 원한다

안경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사업본부장 선배로부터 R사의 티타늄 안경테 이야기를 들었다. 초경량 티타늄 소재의 안경을 유사한 품질의 제품 대비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R사의 대표가 최고의 안경테를 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가 오히려 일본의 회사로부터 티타늄 안경테를 아주 잘 만드는 30년 전통의 한국 기업을 소개받아 브랜드를 만들게 됐다는 얘기였다.
또 R사는 가성비 높은 안경테 뿐만 아니라 가방과 스니커즈로도 유명한데 좋은 상품을 만들어 주는 파트너를 자사 브랜드와 함께 표기해서 좋은 협력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기도 했다. 전통적인 패션기업의 시각과는 다른 모습이다.
지난 초여름 국내에서 ‘살림의 명인’이라고 불리는 분의 마켓과 필자가 운영을 담당하는 쇼핑센터가 협력해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20만 명 가까운 인파가 몰려 그 분의 높은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는데 마켓의 핵심역량은 ‘살림의 명인’이 선정한 셀러들이었다. 수차례의 구매 경험으로 고객들은 참여 셀러들을 잘 알고 있는 모습이었고 해당 셀러들은 수공예품부터 잡화와 수제 식료품까지 품목 장인인 경우가 많았다. 상품의 품질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는 고객에게 마켓을 통해 특별한 가격으로 혜택을 주니 만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거 일반적인 상품기획 프로세스로는 시즌 상품의 종수와 원가에 반영할 예산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백화점과 가두점 등 매장을 상품으로 채우는 것이 긴급한 과제였고 또 매장을 채우기만 해도 상품이 잘 나가던 수요 초과의 시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고객들에게 만족을 주는 가치에 대한 고민보다 더 싸게 많이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고 지금 어려움을 겪는 패션기업들의 약점이 되었다.
공급 과잉의 시대에 성공한 대표적인 글로벌 SPA 기업은 폴라플리스 재킷, 이너웨어 등 핵심품목을 선보일 때마다 매출 외형을 늘릴 수 있었는데 반복 재구매되는 생필품과 같이 패션상품을 기획한 결과다. 소재와 봉제 등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기업 내에서 개발 연구를 꾸준히 해낸 결과다.
최근 지난 몇 년간 고객들이 필요한 상품에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가격과 품질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주는 비율, 즉 가성비에 대한 의사결정이다. 다른 많은 고객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브랜드의 영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추정하는 편익에 부합해야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산다. 그 편익은 품목 한 가지 한 가지 마다 가지고 있는 현물적인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처음부터 내가 구입하려고 하는 품목의 가치를 알 수는 없지만 그 가치를 인정할만한 노력을 공급자들이 해야 하는 것이다. 시장 조사를 하다 보면 상품이 특별히 달라 보이지 않고 지금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디자인을 모두 취급하고 있는 듯 보인다. 고객들이 생각하는 가치에 도달할 기업은 얼마나 있을까라는 고민도 해보게 된다.
지난 주말 중고 명품을 취급하는 업체 사장을 만났는데 이제는 더 이상 특 A급의 상태가 아니면 고객들이 가방을 찾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현물 교환 가치를 고객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티타늄 안경테도, 살림의 여왕이 선택한 상품도, 중고 명품 시계를 선택하는 고객들 모두의 공통점은 현물 가치가 주는 가성비에 있다. 한 글로벌 기업 CEO의 ‘고객은 늘 새로운 것을 원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는 말이 가리키는 것도 현물가치이다.

/요진건설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