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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패션 甲富 - 그 千의 얼굴들 - 제 8화 - 나이키 공동 창업자 필 나이트
頂上을 넘어 새로운 限界에 도전하다 {1}

발행 2017년 07월 20일

장병창 객원기자 , appnews@apparelnews.co.kr

나이키는 스포츠웨어의 한계를 넘어 세계 최정상의 패션 의류기업으로 꼽힌다.


지난해 매출 324억 달러로 패스트 패션 자라의 인디텍스보다 100억 달러 가까이 앞섰고 브랜드 가치는 296억 달러로 LVMH의 루이뷔통 288억 달러보다 앞서있다.


지난해 명예 회장으로 나이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공동 창업자 필 나이트(Phil Knight, 79)의 순 재산은 250억 달러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그의 나이키 경영 50여년을 정리한 ‘슈독(Shoe Dog)’이라는 자서전을 펴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신발에 미친 사나이’ 정도로 이해되는 책 제목이다.


필 나이트의 대학과 대학원 시절을 더듬어보면 이때 이미 막연하기는 하지만 오늘의 나이키 밑그림이 그려졌음을 엿 볼 수 있다.


스탠포드 대학 매거진에 ‘일본 카메라가 독일과 견줄 수 있다면 러닝화도 될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대학원 졸업과 함께 그는 해외여행에 나서 일본을 찾았다. 일본에서 그는 고베시에 위치한 운동화 제조회사 오니츠카 타이거(Onitsuka Tiger Co. 현재의 아식스)와 접촉해 러닝화의 미국 수입 판매 가능성을 타진했다.


당시 미국의 러닝화 시장은 독일의 아디다스와 푸마가 휩쓸고 있었지만 그는 일본 타이거 운동화라면 품질이나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확신했다.


1962년 귀국하자마자 은행 융자 등 1200달러를 밑천으로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on Sports)라는 회사를 급조해 만들었다. 오니츠카 타이거에 신뢰를 얻고 거래를 트기 위해서는 뭔가 실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나이키의 전신이다.


그 후 거의 1년이나 걸려 타이거 러닝화 200켤레가 도착했고 64년 1월 25일에 공동 창업자 윌리엄 바우어만을 맞았다. 바우어만은 오레곤 대학시절 필 나이트의 트랙 코치였다.


필 나이트가 그에게 후원을 얻을 생각으로 수입한 타이거 러닝화 두 켤레를 보내자 놀랍게도 바우어만은 상품 디자인과 함께 아이디어를 제공하겠다며 동업을 제의해왔다는 것이 필 나이트의 회고이다. 당시 바우어만은 필 나이트와 50대 50 비율로 500달러를 출자해 공동 창업자가 됐다고 한다.


그의 첫 출발은 지금의 나이키, 명문대학교 MBA 출신의 엘리트가 하는 일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고생길이었다. 일본에서 수입한 타이거 러닝화를 부친의 지하실에 쌓아놓고 매점이나 종업원도 없이 직접 자동차에 싣고 트랙 선수들을 찾아 행상에 나서야 했다.


64년 사업 첫해에 1,300켤레를 팔아 8,000달러 매출을 올렸고 이듬해 매출은 20,000달러, 3년차에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한 뷰티 살롱 옆 첫 매장을 열고 나서야 자동차 행상을 멈출 수 있었다.


공동 창업자 필 나이트와 윌리엄 바우어만 두사람의 손발도 착착 맞았다. 나이트가 수입, 판매 등 사업 전반적인 일에 몰두하는 사이 바우어만은 디자인 개발 등에 전념하며 기술 혁신의 터전을 다져나갔다. 그의 러닝화 디자인 개발 노력의 첫 결실은 68년에 첫 선을 보인 코르테즈(Cortez).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젊고 발랄한 벨라하디드 등을 간판 얼굴로 내세워 나이키 클래식 코르테즈 러닝화의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


또 집에서 아침 식사를 위해 와플을 만들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와플 모양의 고무창을 밑바닥에 붙여 만든 와플 러닝화, 미우주항공국(NASA)직원의 조언으로 만들었다는 에어쿠션 러닝화 등이 그의 히트 작품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60년대 말에는 연간 매출을 30만 달러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원화로 환산하면 3억원을 약간 웃도는 금액. 여전히 조그마한 중소기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필 나이트의 블루 리본 스포츠가 획기적인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에 들어서부터이다.


71년 천사의 날개 깃을 뜻하는 스우시(Swoosh) 로고와 함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에서 따왔다는 나이키(Nike) 브랜드가 첫 선을 보였다. 블루 리본 스포츠의 첫 해외 자체 생산이 시작된 것도 같은 해였다.


사업 발판이었던 일본 오니츠카 타이거와의 거래를 끊은 것, 나이키(Nike, Inc)로 회사 이름을 바꾼 것, 신규 사업으로 의류 라인을 런칭한 것도 70년대의 일이다.


조깅 붐을 타고 나이키 러닝화가 미국시장 절반을 차지하며 스포츠웨어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해온 독일 아디다스를 제치게 된 것도 이때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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