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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패션 甲富 - 그 千의 얼굴들 - 제 6화 - 아디다스 창업자 아돌프 다슬러
2등은 싫다 … 끊임없는 혁신으로 정상 도전 [1]

발행 2017년 06월 09일

장병창 객원기자 , appnews@apparelnews.co.kr

미국의 나이키와 더불어 세계 스포츠웨어 시장에서 쌍벽을 이루는 독일 스포츠웨어 아디다스는 사연이 많은 기업이다.


창업자 아돌프 다슬러와 그의 대를 이은 아들 호르스트도 이미 고인이 됐고 그 사이에 주인이 몇 번 바뀌어 이제는 프랑크푸르트 증시에 상장된 공기업이다.


아디다스는 최근 포브스가 발표한 글로벌 2000 기업 중 488위, 연간 매출 213억 달러, 시가총액이 396억 달러, 원화 약 44조3,500억 원에 이르는 재산이 축적됐지만 창업자 아돌프 다슬러는 이 재산을 독일 사회에 환원한 셈이다.


아돌프 다슬러(Adolf Dassler, 1900-1978)는 신발 공장의 봉제 기술자로 일하는 아버지와 세탁소를 운영하는 어머니 사이에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돌프에게 당시에는 안정적인 직업이었던 제빵사가 되기를 권했지만 운동화에 관심을 가지고 어머니가 운영하는 세탁소에 작업장을 꾸렸다.


1차 대전이 끝난 후인 1924년 아돌프는 형 루돌프 다슬러와 함께 다슬러 브라더스(Geber Dassler OHG)라는 신발회사를 그가 태어난 바바리아 지역 소도시 헤르초게나우라흐에 차렸다. 12명이 매일 50켤레의 신발을 만드는 가내 수공업 형태였다.


베를린 올림픽, 스위스 월드컵 등에 업고 글로벌 브랜드로 부상
한때 파산 위기 프랑스 크리디 리오네 은행에 매각되는 수모도

 

그러나 이 회사는 형제간의 불화로 쪼개져 형 루돌프 다슬러는 1948년 푸마(Puma)를, 아돌프 다슬러는 이듬해 아디다스(Adidas)를 세웠다.


아디다스라는 상호는 아돌프의 약칭 아디(Adi)와 다슬러(Dassler)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종일 스포츠를 꿈꾼다(All day I dream about sports)’로도 풀이된다.


이때 갈라선 두 형제간의 반목은 아디다스와 푸마 두 브랜드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확산되며 두 형제가 세상을 등질 때도 화해를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강을 사이에 두고 두 공장이 자리해 마을 사람들까지도 앙숙으로 지내오다 60여년이 지난 2009년에 두 공장 대표가 악수를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초창기 사업 전개 과정에서 아돌프 다슬러가 돋보이는 대목은 딱딱한 가죽 운동화 대신 부드럽고 가벼운 소재의 고무 운동화를, 못을 박은 런닝 스파이크화를 최초로 선보였다는 점이다. 다슬러 슈즈를 탄생시킨 것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의 일화다. 아돌프 다슬러는 미국 육상선수 제시 오웬스를 찾아가 다슬러 슈즈를 권했고 제시 오웬스는 이 운동화를 신고 100미터, 200미터, 400미터 계주와 멀리뛰기 등에서 4관왕에 오른다.


다슬러 슈즈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첫 걸음이었다. 이를 스포츠 마케팅의 효시라고도 한다.

 

그 후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더 큰 일이 벌어졌다. 결승전은 서독과 헝가리. 이미 예선전에서 서독은 헝가리에 8대 3으로 참패를 당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전문가나 도박사들은 헝가리 승리를 점쳤지만 서독이 승리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축구계에서는 이를 ‘베른의 기적’이라고 한다.


비가 내려 운동장이 질펀하고 미끄러운 상황에서 서독 대표팀이 다슬러의 스파이크 높낮이를 조정할 수 있는 축구화를 신고 대전에 임했던 것이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를 계기로 다슬러 스파이크 축구화는 크게 인기를 누리며 세계 각국에서 주문이 쇄도, 아디다스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전 세계에 TV 중계가 됐던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때 다슬러는 아들 호르스트를 현지에 보내 모든 참가 선수에게 조건 없이 아디다스 슈즈를 선물하는 홍보전을 펴기도 했다.


아디다스는 1978년 아돌프 다슬러의 서거로 그의 아들 호르스트(Horst)가 바통을 이어받았으나 그 역시 1987년 한창 일할 51세의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뜨는 비운을 맞았다.


경영 공백이 생긴데다 그간 아디다스가 일반 소비자들보다는 스포츠 선수들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해왔던 탓에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 회사를 팔아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아디다스는 1989년 파산 구제 전문의 프랑스 기업인 베르나르 타피(Bernard Tapie)에 팔렸다. 타피는 자금을 차입해 아디다스를 인수했으나 이자를 물지 못해 프랑스 은행 크리디 리오네(Credit Lionnais)가 부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아디다스를 인수했다.


크리디 리오네는 2000년 아디다스 지분을 올랭피크 드 마드리드 구단주이기도 했던 로베르 루이 드레퓌스(Rebert Louis-Dry Fus)에 매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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